정치경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얄리영 2011. 6. 8. 18:15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로빈슨은 막막한 무인도에 살던 중 우연한 기회에 날쌔고 건장한 심복 프라이데이를 얻는다. 두 사람이 생존하려면 고기잡이와 오두막짓기, 이 두 가지 일을 해치워야 한다. 고기를 많이 잡을수록 좋고 오두막 역시 많이 지을수록 좋다. 프라이데이는 10시간 걸려 물고기 한 마리를 낚을 수 있고 20시간 걸려 오두막 한 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종종 고기 대신 자신의 셔츠를 낚고 마는 로빈슨의 경우, 물고기 한 마리 낚는 데 15시간이 걸리고 오두막 하나 짓는 데에는 45시간이나 걸린다. 프라이데이는 고기잡이와 오두막짓기 모두 로빈슨보다 더 능률적인 셈이다. 즉 프라이데이는 두 분야 모두에서 절대우위를 지녔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 논리대로라면 프라이데이는 로빈슨과 분업하기보다 다른 무인도로 이사해 혼자 사는 편이 득이 된다. 그런데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두 사람이 분업하지 않고 각각 시간의 절반씩을 고기잡이와 오두막짓기에 할애할 경우의 생산량을 계산하면, 1년에 프라이데이는 2천 시간을, 능률은 떨어지지만 부지런한 로빈슨은 3,600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프라이데이는 1천 시간씩을 각각 고기잡이와 오두막짓기에 투자해서 물고기 1백 마리와 오두막 50채를, 로빈슨은 1,800시간씩을 각각 투자해서 물고기 120마리와 오두막 40채를 생산해낼 것이다. 두 사람은 도합 220마리의 물고기와 90채의 오두막을 생산하는 셈이다. 이제 두 사람이 분업을 할 경우는, 프라이데이는 2천 시간 모두를 오두막짓기에만 투자하고, 로빈슨은 3,600시간 모두를 고기잡이에만 투자한다. 프라이데이는 1백 채의 오두막을 완성할 것이고, 로빈슨은 240마리의 물고기를 낚을 것이다. 두 사람은 도합 240마리의 물고기와 1백 채의 오두막을 생산한다. 한 사람당 120마리의 물고기와 50채의 오두막이 돌아가는 셈이므로, 분업을 함으로써 프라이데이는 물고기 20마리를, 로빈슨은 오두막 10채를 각각 더 이득보는 셈이다.

 

그럼 분업을 함에 있어 누가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는 어떻게 결정할까?

다시 무인도로 돌아가 보자. 프라이데이는 오두막 한 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물고기 한 마리 낚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두 배 더 소요된다. 다시 말해 프라이데이는 오두막 한 채 지을 때마다 물고기 두 마리씩을 포기하는 셈이다. 한편 로빈슨의 경우, 오두막 한 채 짓는 데 물고기 한 마리 낚을 때보다 시간이 세 배 더 걸린다. , 로빈슨은 오두막 한 채를 지을 때마다 물고기 세 마리씩을 포기하는 셈이다. 오두막 한 채를 짓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물고기 수가 더 적은 사람이 오두막을 짓는 것이 현명하다. 즉 프라이데이가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 바꾸어서 물고기를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물고기 한 마리를 낚을 때마다 프라이데이는 오두막의 2분의 1을 포기하는 셈이고, 로빈슨은 3분의 1을 포기하는 셈이므로 포기량이 적은 로빈슨이 고기잡이를 해야 한다.

 

프라이데이는 오두막을 지을 경우, 포기해야 할 물고기의 수가 로빈슨보다 적고, 로빈슨은 물고기를 잡을 경우 포기해야 하는 오두막의 수가 프라이데이보다 적다. 이때 포기되는 물고기와 오두막의 수효를 기회비용이라 한다. 두 사람은 제각기 기회비용이 더 적은 분야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 분야를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라고 한다. 즉 프라이데이는 오두막짓기에, 로빈슨은 고기잡이에 각각 비교우위를 지녔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저자가 비교우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었다. 기타 요인들은 무시하거나 보류하여 현상이나 논리를 일반화시키는 것이 인문과학이지만, 실제로 무인도에 두 사람이 표류했다면, 위 논리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마음에서 화합하고 분업하기 마련이다또 이런 공식으로 계산하기도 전에 며칠 아니 몇 주 하다보면 더 이득이 되는 분업방법이 자연스럽게 터득될 것이다.

 

이것을 더 생동감있게 알기 위해 내가 잘하는 표류법 즉 두명이 산속에서 며칠 지내기로 하고 텐트 및 야영장비, 요리 및 요리재료 기구를 포함하여 등산 중이었다고 보면, 그런데 이번에도 또 프라이데이가 텐트치는 장소며, 지형지물 이용, 속도 등등에서 모두 낫고 또 요리도 밥도 김치찌개도 기막히게 만든다면 두 가지 다 잘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 손치더라도 상황에 따라 프라이데이가 텐트를 치고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경험적 지식이다. 첫째 공동목표를 위해 서로 도와야 되고 둘째 시간이 없다. 꾸물거리다가는 해가 진다.

 

이 것은 이러한 원리를 떠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화합을 통해 일의 속도가 배가된다는 점에 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마음이 들어 다소간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분업을 하여 이득이 되는 것이다. 또 소규모 상점에서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도 비슷하다. 사장은 종업원보다 제품생산과 판매(고객 응대 포함하여) 모두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렇다 손치더라도, 사장은 일정수입이 유지된다면 종업원을 계속 쓸 것이다. 그 종업원을 쓰는 것이 더 많은 생산과 판매를 해 이득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논리에 앞서 선험적 경험이나 지식, 정신이 결부되어 옳은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험이나 지식 정신이 옳음을 역시 리카도의 비교우위가 증명하는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