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11월(1598년) 난중일기
무술년11월(1598년) 난중일기
- 이순신
무술년 11월 초8일(1598년)
도독부를 찾아가 위로의 잔치를 베풀고 종일 술잔을 기울이다가 어둠을 타고 돌아왔다.
이윽고 도독이 만나기를 청하여 즉시 나갔더니, 도독이 말하기를 순천 왜교의 적들이 초10일경에
철수하여 물러간다는 기별이 육지로부터 전달되어 왔으니 급히 진군하여 돌아가는 길을 끊어 버리자고 했다.
11월 초9일
도독과 더불어 일시에 행군하여 백서량(지금의 여천군 남면)에 이르러 진을 쳤다.
11월 초10일
좌수영 앞바다에 진을 쳤다.
11월 초11일
유도에 이르러 진을 쳤다.
11월 초13일
왜선 10여 척이 장도(지금의 광양군 골약면)에 형체를 드러내었으므로 곧 도독과 약속을 하고 수군을
거느리고 추격했더니 왜선은 움츠리고 종일 나오지 않았다. 도독과 더불어 장도로 돌아와 진을 쳤다.
11월 초14일
왜선 2척이 강화하기 위하여 바다 가운데로 나오니, 도독이 일본의 통역관으로 하여금 왜선을 맞이해
오게 하고 조용히 붉은 기와 환도 등의 물건을 받아들였다. 저녁 8시경에 왜장이 작은 배를 타고 도독부로
들어와서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통을 도독에게 바치고 갔다.
11월 초15일
이른 아침에 도독에게 가서 잠깐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왜선 2척이 강화하기 위하여 두세 번 드나들었다.
11월 초16일
도독이 진문동을 시켜 왜의 진영으로 들여보냈더니, 이윽고 왜선 3척이 말 한 필과 창검 등의 물건을 가져와서
도독에게 바치고 갔다.
11월 초17일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선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로부터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에까지 추격했더니 왜적이 해안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도주했고, 잡은 왜선
및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 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여기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쓰신 임진년 정월 초1일부터(1592년) 써온 일기는 끝난다.
공은 이틀 뒤인 11월 초19일 새벽 노량해전에서 유탄을 맞아 54세의 나이에 순국하신다.
노량해전 민족기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