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향긋하고 기분 좋은 외할머니체취

얄리영 2020. 8. 23. 20:01

향긋하고 기분 좋은 외할머니체취(40년 전 어린시절)

 

 

 

 

울산 2020년 8월12일 배내골계곡 올해는 예년과 달리 긴 장마로 물이 콸콸 흐른다

 

 

이제 외할머니 돌아가신 지 4년이 되었다. 나의 생명이요, 은인이요, 수호천사이다.

낳아주신 어머니가 앓다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시자, 아홉 살 때까지 키워주셨고 물론 그 후에도

항상 큰 힘과 위안이 되어주셨다. 세상에 나와 취업하고 돈 벌고 가정을 꾸려 애를 낳고 키우는 가장이

되어도 외할머니 앞에서는 늘 사랑스러운 외손자였다. 그리고 101세 나이로(내가 49살 때) 노인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아홉 살 때, 부모님과 같이 살려고 들어갔다. 물론 여섯 살 때 새어머니가 오셔서 이 때는 많이 가까워지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 때 기억이 새롭다. 가까이 사셔서 늘 꼭두새벽에 집 문을 두드리셨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머리에는 두건을 쓰시고 무늬가 있는 밝은 회색 세타(니트 스웨터)를 입고, 아랫부분은 목재이고 윗부분은 불투명무늬

통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곤 하셨다. 늘 그 말투와 표정에 정겨운 억양으로 나를 보시고 몇 마디 하시고는

어머니 아버지와 말씀을 나누신다. 나는 외할머니가 오시면 더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서 아침 밥 먹고 학교에 가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 생각하니 하나 남은 핏줄 외손자가 보고 싶고 걱정이 되어 밤새 홀로 지새우다 ‘밥은 잘 먹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이 잘 있는지?’ 걱정이 되어 꼭두새벽에 늘 오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그 때 외할머니 세타(니트 스웨터)에 코를 대면 아주 향긋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기분 좋은 할머니 냄새였다.

아플 때도 슬플 때도 외할머니와 그 체취이면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어렸을 때 스웨터를 세타라고 불렀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전근을 가셔서 서너 시간 이상 걸리는 타지로 이사를 갔다. 처음으로 외할머니와 떨어지게

된 것이다. 늘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는 신났고 다시 헤어질 때는 아주 슬펐지만, 티를 내지 않고 속으로 삼키곤 했다.

돌아오는 길 첩첩산중 골짜기를 도는 버스와 차장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참 슬펐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겹겹이 산,

산촌 읍면에 도착하니 저 앞산이 바로 코앞에 있는 듯 답답했던 생각이 난다. 참 어리석고도 우둔하고 재밋살 하나

없었다.

 

헤어질 때 외할머니께 “할머니 고마워! 건강히 계시고 또 만나요? 사랑해요!” 이런 말을 했었으면

지금 덜 슬플텐데… … .         수줍고 표현을 할 줄 몰라 그냥 뻣뻣이 딴 짓하며 헤어졌을 것이다.

오늘에야 할머니에게 “할머이! 내가 할머이 많이 사랑해”

 

만나서 얘기 듣고 밥 먹고 하면 늘 외할머니의 향긋한 냄새가 나를 편안하게 하고 행복해졌다. 사실 때어날 때부터

아홉 살 때까지 외할머니품에서 컸다. “어미가 젖이 않나와 분유 먹이고 부족하여 차좁쌀을 빻아 갈아서

분유 타 먹이고 우윳병에 타서 들어 가면 네가 좋아라 하며 반겼다” 이 말이 뇌리를 스친다. 참 장작 아궁이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뜨거운 물도 귀하고 하여 어떻게 보관했는지 아니면 새벽에 아궁이 알불에 불을 붙이고 다시

끓여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둘째아이를 세시간 마다 우유 타 먹이고 재우고 하던 옛일이 생각난다.

 

아저씨도 아재들도 나를 보고 가끔 “외할머니가 널 천지 없이 키웠다. 나중에 크거든 잘해드려라!” 말씀하셨는데

십분의 일도 못해 드려 죄송할 뿐이다. 장성해 보니 할머니 체취가 차츰 멀어져 갔고 지금은 그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이 느낌마저 세월이 가면 잃어버릴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늦둥이 둘째딸이 초교6학년인데 7 ~ 8년 전 해외 근무할 때 늘 내 잠옷을 목에 두르고 아빠냄새가 좋다며 잠을 잔다는

얘기를 듣고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얼마 전, 집에서 잠잘 때도 입고 땀도 흘린 짙은 회색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면티에 코를 대고 냄새가 좋다면서 자꾸 킁킁거린다. “흘린 땀냄새가 뭐가 좋냐?” 말하며 물러섰지만, 갑자기 40년 전

어렸을 때 그 외할머니의 향긋한 체취가 떠올랐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은 행복하다.

나를 가장 사랑해준 분의 체취는 어렸을 때는 최고의 사랑이고 커서도 역시 최고의 사랑입니다.

비록 그 체취는 나이를 먹으며 점점 멀어져 가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희미하게 남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고향에 친재하시는 어머니도(새어머니) 사랑하지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