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자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얄리영 2022. 2. 4. 14:24

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 [論語 子罕]    자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논어 자한]

 

 

 

자절사 무의무필무고무아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끊으셨다. 생각을 내세우지 말고, 반드시 이렇게 함도 말고

 고집을 피우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

 

쉽게 말하면,  생각 말고, 반드시 말고, 고집 말고, 나 말고

항상 늘 자신이 잘못될 수도, 잘못볼 수도 있으니 경계하고 노력하고 겸손하라는

뜻으로 새기는데, 이 말에 의한다면 정말 다른 뜻은 없는지? 오늘날로 말하면,

옛것을 고집하고 내세우는 시쳇말로 '꼰대' 기질도 없이 아랫사람의 의견도

또 신세대의 생각도 잘 수렴했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사실, 25여년전에 논어는 수박 겉핥기로 읽었고, 손무의 손자병법은 더욱 그랬고

8년전에 중용은 열달 간 읽고 쓰고 음미하고 정리하여 기록하였지만, 거의 쓸모가

없었던 것이 맞다. 그렇게 좋아진 것도 돈을 많이 번 것도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서 이 글을 다시 쓴다는 것 자체가 그 가르침 덕이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만큼 지식도, 덕도 부족하고 열정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하라고 논어도 중용도 채찍질한다.

 

오늘 다시 접한 공자의 자절사는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하고

스스로를 반성도 하니, 참으로 실천하기 어렵고도 힘든 말이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생각을 너무 내세우면 원래의 뜻에서 어긋나고 특히 다른 사람과 멀어질 수도 있고

반드시 이것이 옳다는 것은 가장 큰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일이요, 정답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옳으니 이렇게 해야된다 고집을

피우면 더 좋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너무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라는 것 같습니다.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우리는 할 수 없는 신기루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