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국어를 위하여(좋은 글과 문학)
“펜은 총과 칼보다 강하다.”
펜은 지식과 정서가 있는 양심을 나타내고, 총과 칼은 무자비한 비양심을 대변하는 말이다. 이 문구는 역사속에서 그 상하강약을 증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글을 어떻게 올바르게 대하며 읽고 쓰느냐에 초점을 둔 말이다. 갸날픈 펜이 총과 칼보다 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즉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말은 잘하는데, 글을 쓰라면 상당히 어려워한다. 글을 잘 읽고쓰는 것은 또한 반복적인 연습과 인내를 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흔히 문학장르 상, 붓 가는 데로 일정형식에 구애없이 쓰는 것을 수필이라 일컫고 이것을 올바르게 접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음율로 표현되는 글인, 시는 쉽게 말해서 그 정서를 음악적 요소로 만드는 기술은 타고나야 되고, 성장과정에서 잘 연습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허구의 이야기, 소설은 보고듣고 느낀 것을 정리하여 보관하고 또 지식을 얻고 융화시키고 하는 필사의 고통이 필요한 것이다. 판단해보건데, 어떤 글을 읽고 그 느낌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창에 비쳐보고 그 감상을 다시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가 열 살을 넘겨야 되지않을까 싶다. 어떤 글이 주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작자가 말하려는 내용과 의도가 파악되도록 여러 번 정독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러므로 수필을 읽는 과정은 작자와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그 지식과 정서, 사상, 경험을 파악하고 또 서로 공유하는 흐름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핵심문장이 파악되고 자연스럽게 줄거리가 요약된다. 글에는 일정한 전개형식이 있어서 처음에는 序(흔히 들어가는 말, 도입부, 서론, 서두 등)가 있다. 여기에는 글을 쓰는 이유가 드러나며, 다소 시사적인 면도 많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화두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서론부분을 읽으면서 독자는 다음에 전개될 내용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내용부분은 그 몸에 해당하고 전하려는 의도에 따라 그 한도가 없다. 여기에는 작자가 전달하려는 지식, 정서, 사상 등을 포함하여 모든 부분이 다 드러난다.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이 있다면 역시 좋은 인생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과 비유해 볼 수 있다. 인생에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 고저장단이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요, 인생에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있듯이 좋은 책도 역시 그런 흐름이 있다고 본다. 내용부분은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해 가는 과정이므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어렵고 인내를 요하는 부분이다. 때에 따라서는 여러 번 정독을 통해 이해가 많을수록 독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다음 결론부분을 예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글의 제일 끝이 結(맺음말, 끝)이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여기서 흔히 나오는 말이 유종지미(有終之美)이다. 처음과 그 끝이 좋아야 아름답고 연관되어야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에는 처음 화두로 던진 질문에 대한 여정이 충분히 잘 이뤄졌는지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되는 것이고, 그 것이 또한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흔히 글을 접할 때, 멀리 보이는 산과 가까이 자세히 보여지는 나무 이러한 표현을 많이 쓴다. 관점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데, 원시안과 근시안으로도 미래와 현실로 볼 수도 있고, 또 넓게 보는 개괄적 의미와 자세히 보는 세부적 분석으로 볼 수도 있다. 하늘에서 매가 사냥할 때 먼저 넓은 산과 강 지형을 보면서 서서히 조감하고 그리고 나뭇가지 위의 작은 새와 풀숲의 쥐를 발견하듯이 그러한 관점에서 글을 바라볼 수 있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 내용의 전문성이나 난이도가 천차만별이고 또 문법이나 규칙에서 접근이 어려운 부분도 많다. 먼저 단어와 구문공부는 사전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반복숙지해야 된다. 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고 그 유사어 반대어 관형어구 등을 알아보면서 어휘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병행해야 하는 것이 동사의 변칙, 음운법, 수사법 등등이다. 더 나아가 품사와 문형구조 등을 습득해야 보다 세밀하고 정확한 의미파악이 가능해진다. 흔히 중등 교육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이 것은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학습으로 반복훈련하면 효과적으로 터득될 수 있다.
언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고, 역사에서 보듯이 교역 및 문화교류를 통해 결국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다. 국어에도 한자를 포함하여 많은 외래어가 토착화되어 통용되고 각종 학술지나 글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자는 국어에 비중이 크므로 반드시 잘 익혀두어야 될 요소이다. 인생의 윤할유가 웃음이라면, 국어에서의 윤활유는 리듬 즉 운율이다. 단어도 일정한 음절이 있고 문장이 만들어 지고 반복된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되었고 또 동시, 시, 노래가사 등의 음악적 요소를 통해 쉽게 접근하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이후 시를 보다 전문적으로 체계화해서 배우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또한 고전(고문)의 공부, 국문학사, 해외번역문학 등으로 더 깊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서라벌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보니 가랭이 네개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신라후기 헌강왕때 동해용왕의 아들 처용과 역신이 등장하는 노래이다. 울산에는 이 설화의 배경이 되는 처용암이 외황강 어귀에 있고 또 매년 처용문화제가 열린다. 처용이 밤새도록 노니다가 집에 돌아오니 역신이 자신으로 변하여 아내와 동침한다는 내용인데, 자료에 의하면 악귀를 쫓는 궂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처용은 역신을 용서하고, 그 후 처용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향가하면, 한자의 음과 훈을 빌린 향찰, 이두로 쓰여졌고 그 뒤에 다시 한자로 기록도 되었다. 특히 양주동 선생이 여요전주를 통해 이 처용가를 최초 해석했다. 사랑을 노래하고, 누이를 그리고, 화랑을 찬양하고, 풍요를 빌고, 일식이나 혜성 등 자연현상을 극복하는 노래 등 수십여 수의 향가가 현존한다. 추정해 보건데, 처용의 외모로 보아 남방으로부터 들어와 관직을 받고 정착한 이주민으로 생각된다. 또 처용의 부인은 아주 빼어난 미모에 남자들이 그 미모를 탐하여 많은 염문을 만들지는 않았나? 또 당시 상당히 개방적인 유희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도 같다. 어쨌든, 이 노래는 너무 사실적이고 자유분방한 표현이 그 가치와 의미를 넘어 오히려 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시인 고은 선생의 시를 영문으로 번역이 가능할까? 사실상 시의 음악적 요소, 운율을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정서와 의미를 번역할 뿐이고 또 다른 빼어난 시인이 영문으로 다른 시를 쓴다는 표현이 차라리 옳다고 본다. 인생을 통한 창작의 고통과 그 뜨거운 열정, 그리고 아름다운 시집과 감동받은 독자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비롯한 문학을 번역하는 활동은 또 다른 창조의 고통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문학이란 문자로 쓰여진 것을 객관화하고 분류하는 과정이다. 이럴 때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이 시론서문을 ‘헛소리! 찢어버려’ 라고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름답고 소중한 글을 쓰는데, 좋은 국어를 위하여 이 방법이 가장 최선이다 라고 답할 수 없는 똑 같은 이유이다. 한국을 사랑하고 싶으면 조용히 동해안을 종주해 보라. 고통을 통해 심신의 묵은 먼지와 티끌이 정화되고 맑고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국어를 사랑하고 싶으면 문학집에 흠뻑 젖어 책 속에 종주해 보라. 당신의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지친 삶의 피로를 씻어 주고 새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국어를 사랑하고 인내로 성실히 보듬어 주면 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배꽃이 활짝 핀 봄밤의 정취를 노래한 조선조 학자 이조년의 시를 각색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활짝 핀 배꽃사이로 달이 떠오르고, 밤은 깊어만 가는데
국어사랑하는 이 마음을 저 노래하는 새는 알련가 모를련가?
그 사랑 너무 깊고도 애달퍼 마당을 거닐고 또 거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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