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경성(有志竟成)
 

울산 태화강 핑크뮬리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룬다!! 마침 여름부터 지금까지 곤경에 처해, 심신이 지쳐갈 때 이글을 접하고 마음을 되잡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에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 흙을 파 우물을 메워 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어 계속 바닥에 흙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렇게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결국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과 당나귀를 묻으려 했고 당나귀는 그 화를 바꾸어 복이 되었지요!!
有志竟成 轉禍爲福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고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

평택 고덕면 동고리 진위천 강둑을 걷다

 

 

진위천 전경1

 

진위천과 조수(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

 

개불알풀 개불알꽃 아주 작아서 자세히 보면 무리를 이루고 있음

 

백목련을 보면 어렸을 적 원숙했던 누나 이모들이 생각난다

 

 

소풍공원 벤치에 누워 가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고덕면 동고리 진위천 강둑을 걸었다.

먼저 농롯길을 걸으면 자연를 만난다.

 

외진 수풀이 어스름한 텃밭의 나무에는

산비둘기 너덧마리가 산다. 마을경로당 앞

높은 나무위에는 까치들이 있다. 농롯길에는

민들레도 쑥도 아주 작은 개불알꽃도 있고

이윽고 둑방을 올라서면 보랏빛 괭이나물

꽃도 있고, 이름 모를 풀들이 올라왔다.

 

새순 돋은 버드나무에는 머리에 빨간반점이

있는 딱따구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참 운이

좋다!! 딱따구리를 보다니! 개천에는 오리들

가마우지도 있고 백로와 왜가리가 난다.

 

소풍공원에 다다르니 새소리에 검은흰색의

박새도 붉은머리 오목눈이도 있다. 참새는

약방에 감초이다. 작은 못에는 텃새

흰뺨검둥오리가 자맥질을 한다.

 

많은 상춘객을 만나고 조수를 하는 사람들.

누워서 하늘과 가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에 논 가운데 고라니 두 마리가

재빠르게 도망친다. ! 그 먼거리에서도!!

마을어귀 고양이 한마리가 안식처에서

경계를 한다.

 

방에 들어오니 나른함 속에 행복이 있다.

 

 

 

무료(無料)이다, 무료(無聊)하다

 

 

아침에 EBS 교육방송을 들으며 출근하는데,

638분경에 어떤 한 광고가 나온다. 초교생 아들이 아빠에게 묻는다.

 

    아들이      아빠 무료하다가 뭐야?”

    아빠 왈     “음, 그 말은 어디서 봤어?”

    아들이      책에서 무료한 시간이라고 하는데?”

    잠시 후,    아들이 또   “공짜란 거야?” 하니,  

 

'와우!!' 음향효과와 함께 광고가 시작된다. 참 재밌었다!!! 물론 알고 있었는데

다시금, 옥편에서 한자를 찾아 뜻을 헤아려 보았다.

 

 

무료(無料) 거저, 공짜, 요금이 필요 없음,  예) 설날 연휴 통행료는 무료입니다.

                  요금(料金) 수수료를 주는 돈   ) 전기, 수도, 가스요금, 통행료

 

무료(無聊) (없을, 귀울릴() ) 귀울릴 일 없이, 할 일 없이 심심함

                  예) 영수는 무료하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선생님은 무료하여 커피를 한 잔 타셨다.

 

 

              

 

 

 

 

 

말이 필요 없다.

 

오늘을 바쁘게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 틀에 박힌 일상에 살고 있다.

물질과 돈 그것이 가져다 주는 행복과 미래를 꿈꾸며 싸우고 또 싸운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면, 행복해 지고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

바로 장애를 가졌지만 웃고 있는 소녀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이다.

늘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해왔지만, 단지 그 행복한 미소가 

벌판에서 헤매이는 어리석은 심신을 어루만져 준다.

 

 

 

어린 시절(1970년대 강릉지방)의 추억놀이 및 얘기들
 
 
1. 황설이집, 각설이들이 여름에 사는 허름한 집처럼 만들어 놀았는데, 자줏빛꽃 싸리를 많이
    꺾은 기억에, 가냘프고 부드러운 모기풀도 그 외 다른 풀을 이용하여 산등강에 소나무 네개를
    기둥 삼아 칡줄을 치고 지붕을 만들면 공간이 만들어지고 안에 바닥도 모기풀이나 싸리풀을
    꺾어서 깔아 다 완성되면 들어가서 마치 아지트처럼 좋아라 하며 놀았는데 동네 제일 큰형이
    대여섯살 많았고 또 그 아래 형들이 있고 친척누나도 가끔, 친구누나가 둘 있었고 친구, 나
    그리고 동생이 몇 명 이렇게 어울려 놀았음
2. 비 오면 도랑이나 방죽에서 종이배 띄우기, 비가 오면 산비탈 도랑들에 물이 차면 종이배를
    접어서 띄우며 놀았던 기억이 남
3. 집안 섬뜰에 두꺼비 밥주기 섬뜰 아래 두꺼비가 살았는데, 여름에 그냥 밥을 주니 잘 받아 먹었음
    특히 달이 밝은 날에는 잘 볼 수 있어서 좋았음
4. 족제비와 쥐잡기 그리고 두더지, 주로 쥐약을 놓아서 잡거나 광에는 쥐덫을(발이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형태로 잡힌 쥐는 엄청 아팠을 것임!) 놓아서 잡음, 곳간에는 가끔 박쥐가 살았는데

    사람이 다가가면 무척 경계하고 특히 소리가 시끄러웠던 기억이! 두더지는 뒷밭 고구마밭(황토)에서

    이따금 잡힘. 땅강아지라고 손마디 정도 길쭉하고 앞발이 넓고 배에 날개더미까지 잡아서 놀았다.
5. 돌싸움, 외할아버지 말씀에 일제 때 마을끼리 석전이라 하여 돌싸움을 했다고 하셨고, 고교 때
    그 지역 출신 체육샘도 돌싸움에 대해 말하여 기억남. 우리는 돌싸움은 하지 않았지만, 산에서
    참나무 가지나 아카시아를 자르고 껍질을 벗겨내 칼을 만들어 칼싸움놀이도 했었음
 
6. 아랫골 독골 할머니의 도깨비얘기 외할머니의 할머니가 아랫골 외딴 곳 독골에 살 때, 밭에서
    일하시다 늦어지면 정지(부엌)에서 도깨비가 밥을 달라고 밥그릇을 달그락달그락 했다고함!!!
7. 찐감자 감자 쪄서 고추장을 발라먹기, 감자전은 감자를 송판에 갈아서 그 두툼한 것으로 전을
    부치는데 맛있음. 또 감자떡이라고 있는데 주로 밭에서 속아낸 작은 감자를 물에 넣어 삭혀서
    주로 검은 색, 짙은 회색의 녹말을 걸러내 말려서 만듬
8. 명태국 명태찜 도루묵 양미리, 동해바다에서 갓잡은 생태를 시장에서 사오면, 간과 양념을 
    하여 아침에는 맑은 생태국을 시원하게 먹고, 점심에 두부와 무 고춧가루가 곁들여진 생태찜이
    맛있었고 지금은 생태가 없으니 동태로 동탯국을 끓여도 그맛이 날 것 같은데, 동태찌개 밖에는
    없고 대구탕이 비슷한 맛이 남. 당시만해도 늘 명태가 풍성하게 많이 잡혀서 명태국과 찜을 먹고
    지금처럼 탁하고 벌건 명태찌개는 거의 없었음
9. 느르매기(새총) 재빠르게 잘 만들고 잘 쏘는 애들은 작은 새도 맞추어 잡으려고 이산저산 뛰어
    다녔고 심지어 다람쥐도 맞추어 잡음
10. 굵은 대나무를 가지랑이에 끼고 말타기 작은 애들이 말이라고 대나무를 타고 동네를 뛰어
      다녔지요! 참 웃겼지요!! 너덧 살 때 그랬던 기억이!!
 
11. 여자애 감꽃으로 목걸이 만들기, 남자애들은 떨어진 작은 감으로 나무가지를 꽂아서 장난감차
      형태를 만들어 흙장난을 함
12. 서낭당(성황당) 올라가기, 고개등강 옆에 큰 아람드리 소나무 밑에 사람들이 제사나 기도음식을
      고수래하면서 갔다놓음, 외진 곳이라 좀 으시시했음
13. 마을에 바보(정신지체, 자폐성)형님과 놀기, 시내 변두리로 나왔는데 언덕으로 올라가는 윗집에
      나이는 열살 이상 많고 그냥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제대로 보살핌 치료를
      받지 못해 그냥 동네에서 같이 지냄, 정신수준도 낮아서 또래처럼 배울 수도 없고 말을 못하고
      '애배애배 애애애' 해서 다들 애배라고 불렀음, 무섭기도 했지만 가끔씩 같이 놀기도 함

      아이스께끼, 하드라 하여 많이 먹었는데 그 얇고 길쭉한 손잡이를 많이 모아서 놀기도 함
14. 용곡지(쌀미꾸리)잡기 주로 물길의 수렁이나 물이 고여있는 샘 등을 막고 물을 퍼내고 용곡지를
      많이 잡음, 그 용곡지에 소금을 쳐 숨을 죽이고 나면, 고기를 삶아서 뼈를 발라내고 마늘 생강을
      넣어 비린내를 잡은 것 같고 지역에 맞게 찹쌀도 끓여넣고 갖은 양념에 죽처럼 먹었음
15. 논에서 도랑에서 골뱅이잡기 산에서 고사리, 쌉쏘름하고 신맛 나는 나물 채취하여 먹었음
 
16. 겨울에는 썰매타기(안질뱅이) 넓은 논이나 저수지 방죽의 얼음 위에서 앉아서 타는 안질뱅이,
      서서 타는 썰매도 심지어 외발날도 있고 가끔 스케이트를 가지고 오는 형들은 관심의 대상
17. 망우리돌리기(쥐불놀이) 분유통이나 각종 깡통에 옆면을 송곳이나 뾰쪽한 것으로 구멍을 내고
      깡통끝에 철사줄을 넉넉히 묶어 불을 피우고 솔갱이나 나무조각을 넣어서 돌리면 됨. 옆에서는
      마른 풀이나 둑방을 태우고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함
18. 소갈비 끌기, 솔깽이(소나무 송진아지) 꺾기, 반딧불이 잡기는 여름철에 많이 함
19. 산딸기 감탕 오디 앵두 자두 살구 오얏 따먹기
20. 새알 훔치기, 하나 기억 나는 것이 대여섯 살 때, 집에서 내려와 은날뿌리를 지나고 산기슭길을
      조금가면 옆골짜기에서 도랑이 내려오는데 그 수풀에 새집을 발견하여 새알을 가져온 기억이
      그때 새소리가 엄청 시끄러웠음
 
21. 올빼미(도롱뇽) 잡아서 망태기에 담아서 가지고 노는데, 어느 늦가을 할아버지가 산비탈 도랑을
      치시다가 도롱뇽을 두어 마리 잡아주셔서 그때는 늦가을이라 아마 동면에 들었거나 잠을 자서
      망태기에 담아 가지고  있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다시 가보니 도망치고 없었던 기억이!!
22. 팟망아지벌레 그냥 굵은 중지손가락 만한 벌레로 녹색을 띠고 테두리로 약간씩 줄무늬가 있었고
      마당에 울타리에 수풀이 무성한 여름에 보였고 또 오동나무잎도 돌돌 말린 곳에 보면 있었고,
      또 지금 살고 있는 도시 변두리 지역의 마당에 감나무와 화초 목단 목련 철쭉 장미 등등 그리고
      돌단풍, 채송화, 봉숭아도 있는데 그 봉숭아줄기에 늦여름에 보면 주로 같은 크기에 색깔만
      갈색을 띠고 그때는 깻망아지벌레라고 불렀음. 뽕잎에 누에보다는 컸고 나방의 에벌레임
23. 정지 아궁이 부짓갱이 재를 끌어담는 곰배 농삿일이나 담을 때 쓰는 새끼망태기
24. 옛날수도, 땅속을 물길까지 파내려간 다음 관을 묻어 올려 공기압력으로 퍼올리는 수도를 말하는데
      수도관이 올라와 연결돼 주전자처럼 볼록하게 넓은 그곳에 공기압력을 이용할 고무패킹자루가
      있고 그 위에 고무패킹자루를 끌어올리는 지지대가 있고 또 패킹지지대를 반복으로 올리고내리는
      수도를 잘 자아 줄(잣다 - 기계에서 무엇을 뽑을 때 동작을 뜻하는 동사) 수도지렛대자루가 있다.
      먼저 주전자처럼 볼록한 곳에 마중물을 넣으면서 지렛대자루를 위아래로 90도 각도로 회전하여
      잘 자으면 관에서 상하로 마중물과 아랫물길 사이에 공기압력이 발생하여 물을 위로 끌어올리는데
      아마 지금도 농촌 벽지에 가면 볼 수 있을 수도.
25. 디딜방아, 우리집에도 마당왼편 산비탈 아래에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아주 길게 통나무를 깎아서
      앞부분은 숫모양의 돌정구가 길고 끝이 뭉툭하게 수직으로 달려있고 아랫바닥에는 땅에다 암정구를
      단단히 고정하고 가운데 시소처럼 앞과 뒤를 서로 위아래로 엇갈리게 운동시켜주는 중심이 있고
      뒤에는 나무가 하나로 오다가 두 가닥으로 갈라져 사람이 올라서서 밟을 수 있게 바닥이 넓적하고
      헛간 천장에 줄을 매달아 잡고 체중으로 방아를 올렸다내렸다 하며 앞 돌정구로 곡식을 빻는다
 
26. 옛날식 탈곡기, 도리깨질 탈곡기는 주로 벼베기를 하고 잘 말린 다음 포기를 잡고 발로 발판을 밟으면
      그것이 옆에 기어를 작동시켜 가운데 원통틀을 빠른 속도로 돌리기에 손이 잘못들어가면 위험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도리깨는 긴 장대를 두개 대어 가운데는 360도 돌릴 수 있게 되어 들어서 힘을 주고
      내려치면 상단의 막대기가 땅에 있는 곡식 줄기, 콩이나 깨 등 낱알을 떨 때 쓴다
27. 겨울 비닐비료부대 타고 언덕에서 내려오기, 겨울에 눈이 소복히 내리고 다음날 얼면, 산등강에
      애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젊은이들까지 비료부대에 몸을 싣고 아래로 곤두박질치면 아주 재밌었음
28. 눈슬러리 함정 눈이 내려 녹아서 길이 질 때, 길에 함정을 파고 눈슬러리를 담고 주변과 비슷하게
      맞춰 놓으면 별주의 없이 바삐 가는 사람들이 빠져서 낭패를 봄, 한번 밖에 멀찍이서 망을 보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빠져서 난처해할 때 마음이 조렸었다.
29. 약방과 침 맞기, 아랫집 할아버지가 가끔 침을 놓으셨는데, 내가 애기 때 열이 높아서 앓을 때
      아마 홍역일 때 그 할아버지께서 침을 놓아주셨다고 얘기를 들음
30. 홍역, 아기가 열이 나고 체온이 올라가는 현상 천연두(곰보병), 할머니벌 아재가 주사를 맞지않아
     얼굴에 곰보가 생겨 어렸을 때 놀림을 받았지만, 부자로 잘 살았음
 
31. 전사가 난다 뿌리가 있는 문중에서 윗대조상의 기제사 중, 5대조 이상부터는 문중에서 합제를
      지내는 것으로 지금은 현대식으로 문중 동산과 납골당이 있음, 당시에 죽일이라는 곳에 추모각이
      있고 문중 어른들이 모여서 준비하고 제를 지내는데, 먹을 것이 궁핍했던 때라 주변에 사람들이
      그곳에 많이 가서 대충 거들거나 하여 제사음식을 얻어 먹었음. 외할아버지가 전사에 늘 가시면
      나를 드물게 데리고 가는데 한번은 문중 전사라 아재도 같이 갔는데,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 나를
      불렀는데 부끄러워 가지 않았음
32. 장사 상여가 나간다, 말그대로 장사를 치르는데, 상여를 직접 메고 장지에서 하관하는 장례여서
      이때는 아이들이 뒤를 같이 따라가면 어른들이 떡이랑 먹을 것을 준다. 기정 절편 가래떡
33. 강릉단오제구경, 대관령산신을 모셔와 무당이 신전을 지키고 굿을 함 그네도 타고 씨름도 하고
      서커스단에서 신기한 묘기를 보여주고 요술집, 야바위꾼도 잡화를 팔고 옷을 팔고 음식을 파는
      온갖 난전도 있고 뭐니뭐니 해도 많은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제일 재밌음
34. 단오날 강릉상고(제일고)와 강릉농고(중앙고)의 축구정기전, 강릉상고는 카드섹션과 응원수술로
      문구를 새겼다 예를 들면 단오제 정기전 등 군무 학교상징 용을 만들어 응원하고 강릉농고는

      교복 모자로(검정색과 내의 흰색 대조) 작과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군무에 학교상징

      거북선을 만들어 응원, 여담으로 시합이 끝나면 두 학교에서 응원도구를 담은 가방에 돌을 담아와

      서로 상대방쪽으로 던짐!! 항상 두 학교 가운데는 경계구역이 있었는데, 이때는 피해를 보았으며,

      사실 이런 응원전은 반대편에서 보아야 멋있고 화려함. 나는 강릉상고 주변에 살았고 아저씨들도

      상고를 많이 나왔고, 특히 응원출정식이나 대회를 하면 응원단이 분장하고 블라스밴드가 앞장서고

      그 뒤로 선생님과 학생들이 줄을 맞추어 시내를 행진하였고 그것이 장관이었고, 특히 전국대회를

      우승 하면 강릉시 전체의 경사였다. 여담 두번째 강릉농고에서 정기전을 진 다음, 새벽에 강릉상고로

      진격하여 학교 정문을 떼내어 그것을 말리던 경비를 제어하고 남대천에다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35. 강릉경포해수욕장, 송정, 안목 등등 해변에서 조개잡이, 두 자루 가득 담아 와서 가마솥에 끓인
      그 맛이 정말로 꿀맛이었음
 
36. 정월대보름에 오전에는 더위를 팔고, 먼저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더위 사가라' 하며 더위를
      파는데 당하면 참 속이 상했음. 또 저녁에는 소고며 북이며 피리를 들고 약밥 오곡밥 나물 등 먹을
      것을 얻으로 다니는 각설이타령을 했는데, 어른들도 많이 주고 심지어 돈도 주고 하여 한번은 우리집
      건넌방에 다 모여서 동네아이들이 형이고 동생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37. 옻나무와 옻오름 등강을 내려오다가 산기슭에 옻나무가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옻을 채취하러
      갈 때 따라갔다가 옻이 올랐다. 얼굴에 올랐는데 그 때 할머니가 달걀을 깨서 얼굴에 발라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했다.
38. 여름밤 어두운 길가에서 줄을 묶어 놓아 행인 넘어뜨리고 물뿌리기 인제살 때,  초교 3, 4학년
39. 인제군 인제읍에 살 때, 칡캐기 인제 내린천 도강 및 수영 아버지 전근으로 인제에 살 때 친구들과
      내린천 상류 개울에서 여름에 옷을 다벗고 물놀이. 수영을 잘하는 친구들은 개울을 넘어가고
      그러지 못한 친구들은 중간에서 신나게 놀았음
40. 명절이나 가끔씩 고깃간에 가면 소고기는 신문지나 누런 종이에 포장해 주었다. 포장지가 없어서

      읽고 난 신문지를 사용했는데 포장지로 제일 좋았다.
 
41. 지금은 개울물이 얼마나 흐르는지 모르지만, 과거 1974 ~ 5년 강릉 옥계의 개울물은 제법 깊었다.
      개울을 흘러가게 두고 약간 돌을 올려 막아놓으면 황어 누런 색의 연어와 비슷한 것이 올라와
      어른들이 창으로 잡곤했다. 또 돌틈 사이로 새우,  고기들이 득실거렸다. 특히 얕은 물 자갈 틈

      사이로는 칠성장어도 제법 많이 잡혔다. 여기에 살 때도 여름에 개울물에서 다벗고 헤엄쳤다.

42. 교복 : 검은색 교모, 검은색 교복 상의, 검은색 교복 하의(모두 동복과 하복이 있었고

      체육복도 마찬가지), 신발

      1)교모 : 학교배지(앞면 정중앙), 턱끈, 귀단추

      2)교복 상의 : 목카라(왼쪽 학교배지, 오른쪽은 학년표시) 명찰, 단추4개, 손목 뒷단추 3개

      3)교복 하의 : 단정한 다림질(줄을 잡으면 않됨), 단정한 바지끝단, 요대, 주머니

      4)신발, 가방(군청색 드는 가방, 등에 메는 밝은색 가방)

      1982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교복을 입었는데 기억이 완전히 나지는 않음. 주로 요대로 걸리고

      학년표시, 단추 그리고 손목 뒷단추가 실이 닳아서 떨어져서 복장 불량에 걸릴 수 있음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그리고 동전의 양면

 

 

500원, 100원, 50원, 10원

 

현실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나 상태를 말하고, 이상이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

이 둘은 관념적으로 전혀 달라 완전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고 다소 다를 수도 있고, 존재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도 심지어 현실의 시비를 따질 수도 있다. 또 생각하여 실천한 것이 다소 다를지라도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따져보고자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최소한 이상주의자라도 현실에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현실 인식은 거의 분명하듯이 보인다. 현실과

완전히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상주의자는 현실을 살면서 그 기질 때문에 또는 그로 인한 행동양식

때문에 현실 인식에 방해를 받는다. 실패와 진실을 거듭하면서 더욱 노력하여 현실의 해법을 찾고 따라가야만

된다. 따라가다 보면 이상주의자에서 벗어나는가? 아니면 그 해법이 이상을 벗어나면 포기하고 도로 이상의

세계로 돌아오는가? 반대로 현실의 목표를 향해 투쟁하는 현실주의자는 상상을 하지 않고 목표로 하는 이상이

없겠는가마는 이 두가지에 대해서는 많은 다양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현실과 이상은 둥근 공처럼 처음에는 한 덩어리가 아니었을까?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행하는 데는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선택이 따른다. 현실에서 생각하고 선택하여 행하면 많은 이상 중에서

선택 받는 것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우주의 기본입자, 모든 물질의 기본이 되는 태초의 입자를 찾는 것이 과학이자 철학이다. 과학과 인식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정확해지고 작아진다. 태초의 물질 기본입자가 모여 물질을 만들고 그것이 사물을 이룬다.

이렇듯이 인간의 인식도 이러하다. 처음에는 둥근 공처럼 현실과 이상이 분간 없이 섞여 있다. 서서히 인식하면

서 분리되고 나열된다. 체계적으로 나열되면서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그 인접경계는 구분할 수

없이 같다. 양극으로 갈수록 그 성질은 극에 달한다.

 

이렇듯 현실과 이상은 이러하다고 본다. 동전의 양면으로 볼 수도 있다. 그 본질은 같은데 드러난 형식은

하늘과 땅이다. 그리고 어디가 현실이고 이상인지 구분할 수 없다. 물론 실재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즉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즉 자각 인식하는 것이 현실인데 그것이 어떻게 현실임을 확신할 수 있는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인가? 즉 생각하므로 인식하므로

나의 존재가 성립되는 것인가? 동전의 한 면은 다른 면을 볼 수 없다. 이차원이다. 그런데 그 둘은 한 몸이다.

어쩌면 이상과 현실이 이러하다. 우리는 그 동전을 전체적으로 보니 양면을 볼 수 있고 양면이라 말하지

동전의 한 면은 오로지 한 면일 뿐이다.

 

 

 

 

 

 

 

산사(山寺), 가을에 젖어들다

 

 

신흥사 2021년 11월10일 울산

 

 

쉬는 날을 틈타 동으로 보이는 호계 삼태봉으로 난 길을 올랐다.

능선에서 신흥사로 난 오솔길은 동쪽 바다로 내려가는 비탈길이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여태껏 잊고지냈던 삼태봉의 가을에 취하였다.

누런 나뭇잎비를 맞으며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가을 속으로 들어가

정녕 물아일체(物我一體)였다.

 

 

가을에 취하고 산사에 취하고 마음에 취하고 구름 속의 파아란 하늘에

반하였다. 설악산, 오대산, 내장산이 아니라 삼태봉의 가을, 내마음의

가을에 반하는 것이다. 신흥사에 들러, 대웅전 산신각에서 바라본 하늘은

차디차고 깨끗하고 따뜻한 햇살의 영웅호걸이 보았던, 그 장엄한 호천(昊天),

호천의 가을 그대로였다.

 

기억나는 세 가지 밥상

 

 

 

시골 부엌

 

 

 

얼마 전 모 티비프로에서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을 재조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10년간 전국의 세계적으로

사는 한국인의 밥상 모든 것을 먹어 보고 가 봤지만 최불암 선생님은 “어머니의 지혜로 만든 가난한 밥상이

가장 맛있어요”라고 했답니다. 갑자기 다시 생각나 기억나는 세 가지 밥상을 여기에 적는다.

 

첫번째는 1970년 중반 초등학교에 다닐 때 외할머니, 아저씨 그리고 나 이렇게 산 적도 있었다. 당시 강릉은

명태가 많이 잡혔다. 흔히 지방태 또는 생태라 불렀다. 강릉 앞바다에서 갖잡은 생태를 나랑 같이 용강동시장에

가서 사서 다음 날 아침에 생탯국을 끓여 주시곤했다. 갖잡은 신선한 생태에 무와 두부가 들어가고 집간장,

소금 그리고 양념이 들어가 끓인 후 고춧가루를 푼 따끈하고 맑은 생탯국은 지금에 생각하니 최고의 맛이었고

최고의 밥상이었다.

 

두번째는 1970년대 말 돼지고기두루치기였다. 강원도 인제읍 상동리에 살 때였는데, 시골은 졸업식날 흔히 찾는

음식이 그때까지도 자장면이 순위를 차지했다. 빠듯한 살림에 매일 먹는 끼니 속에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께서

돼지고기를 사오시면 전기후라이팬에 굵게 썰은 돼지고기와 먹는 김치와 몇몇 양념에 고기를 익히면 코끝에 흐르는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냄새와 그 맛이 정말로 일품이었다. 그날은 동생들과 함께 아주 배터지게 먹는 날이었다.

 

세번째 밥상은 2001년 8월2일 백두대간을 홀로 구간종주할 때, 지리산에서 조금 지난 여원재에서 2, 3킬로미터를

걸어 밭가에 허름한 시골가게에서 아주머니가 내어준 밥을 물에 말아 김치와 먹은 허기진 점심이었다. 오후 한 시경 

여원재에 도착했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바닥열기가 확확 찌는 콘크리트길 지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그늘도 덥긴 마찬가지고 식사를 해야 되는데 귀찮았다. 일단 가게를 찿아 탄산음료를 사먹고 싶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물어 한 1 킬로미터를 걸어 허름한 구멍가게를 찿았다. 아주머니가 식사 후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음료수 네 캔을

단번에 마시니 찬 없다 하시며, 밥을 물에 말아 주셨다. 더위에 지친자에게는 찬밥에 물을 말아 김치가 최고였다.

허기도 채우고 정신이 들었다. 정말 고마웠다.

 

물론 산해진미 값비싼 갖가지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 그런데 진정 나에게 가장 맛있는 것은 삶 속에서

가장 음식이 필요할 때 또는 어머니, 외할머니의 지혜로 만든 가난한 밥상이었다.

 

 

 

 

 

 

 

1970년대 초 울산공업탑과 오늘날

 

 

 

 

1970년초 울산공업탑 9시(문수로) 10시(봉월로-태화교) 14시(삼산로) 15시(수암로-장생포) 17시(두왕로 없음)

 

2008년 9시방향(문수로) 11시방향(봉월로-태화교) 14시방향(삼산로) 15시방향(수암로-장생포) 17시방향(두왕로)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나는 세 가지 밥상  (0) 2021.11.09
1970년대 초 울산공업탑과 오늘날  (0) 2020.11.24
동일 글자 세 개로 이뤄진 한자 외  (0) 2020.10.11
행복의 조건  (0) 2020.09.17
가을의 기억법  (0) 2020.09.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