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리
1990년 봄 군복무를 할 때 일이다. 연대체육대회가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축구, 족구,
태권도, 배구, 계주 그리고 단축마라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마지막날 연대본부연병장에서
오전에 단축마라톤 출발이 있었고, 이후 각종경기의 결승전과 계주가 있었다.
군복무하기 전에 새벽 조깅을 즐겨하며 입대전까지 동아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4일 정도는 20킬로미터 이상을 뛰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가 보다. 처음 자대배치 받고 운동 잘 하는 것 주특기를 묻길래, 특별히 잘하는 운동이
없어서 마라톤이라면 자신있다고 했다. 실제로 학창시절에도 단거리 장거리 모두 상위권이었다.
그 것을 연유로 하여 체육대회 때 대대대표로 뛰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62 kg을
나가던 몸이 75 kg까지 불었다. 그래도 선착순 행군 등에서 상당히 빨랐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그 몸무게에도 선발되었다. 나름대로 선수들끼리 오후시간에 열심히 연습했지만 좀 불안했다.
13kg이나 몸이 불어 좀 둔탁한 느낌도 들었고 또 연습때도 같은 대대선수 중 중간 밖에는
순위가 않되었다.
드디어 체육대회 마지막날이 왔다. 대대병사들도 특히 우리중대원들도 화이팅을 외치며 선전을
기원했고 고참들은 사회에서 마라톤을 했다고 하니 좀 기대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연병장에서 탕 소리와 함께 한 이십여명 되는 선수들이 한때 엉켜 뛰어 나갔다. 연병장을 돌고
故강재구 소령 기념탑을 반환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한 20 킬로미터는 될 것 같다.
우려했던대로 몸이 다른 선수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쳐지기 시작했다. 중반에 아무리
뛰어도 속도가 나질 않았다. 반환점을 향해 애를 쓰며 뛰기를 한참만에 선두주자가 반환점을
돌아 나와 마주쳤다. 이런 한 1킬로미터 이상 차이가 난 거 같다. 정말 미칠 지경이다.
고참들 비웃음소리도 들리는 듯 했고, 중대장님 얼굴도, 후배 병사들 얼굴도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뛰어 반환점을 도니 후미권에 뒤로 몇 명 있을까말까 했다. 내가 왜 대대대표가
되었는지 후회도 되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이따금씩 간부들이 화이팅으로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 우리대대가 근소하게 종합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마지막 3 ~ 4 킬로미터 정도를 남기고 도로변으로 접어 들었을 때 작전장교(소령)가
자전거를 타고 옆에서 많은 격려를 해 주었다. 뒤에 선수들한테 추월당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대대가 선두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젠 모든 비웃음, 챙피함도 없어졌다.
그저 꾹 참고 뛰는 것 뿐이다. 아직도 몇 킬로미터 남았는데, 그런데로 같이 동행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힘이 났다. 드디어 연대진입로가 보이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계속 뛰었다.
연대입구에 다다를 쯤 작전장교는 나를 앞질러 연병장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지친 모습없이 열심히
뛰어 연병장을 돌고 골인하였다. 작전장교가 잘했다며 나의 몸을 치켜세워 주었다. 그 순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얼마 뒤에 서너 명이 더 들어왔다. 참 힘든 레이스였지만, 후미한테 추월을
당하지않아 대대가 선두를 유지하고 마침내 우승할 수 있었다.
차츰 빠지던 살이 제대할 무렵에는 정상 몸무게로 돌아왔다. 그후 시간이 흐르고 입사하여
울산공장 체육대회 때 단축마라톤에 참가하여 전체 3위, 2위를 하여 이름이 좀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등산, 조깅, 축구 등을 하며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운동시합에 나가 당연히 우승, 상위권이 좋고 기쁜 것이고 또 기록에 남는 것이지만, 이렇게
작은 승리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일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군시절 작은 승리, 마라톤 레이스가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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