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감과 곶감
네다섯살(1970년대초) 때 강릉 원대재의 얘기일 것이다. (여섯살 때 강릉시내로 나왔다)
외할아버지가 들녘 큰 감나무에 오르셔 장대로 익은 감을 따고 망태기에 담아 줄로 내리면
아재가 고무그릇, 함지박, 망태기에 담고 나는 가끔씩 외할버지가 따서 주는 홍시를 기다린다.
한번은 외할아버지께서 내려오시다 제일 아랫가지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아재 어깨를 스치고
다시 언덕을 굴러 넝쿨을 넘으면서 논바닥에 떨어지셨는데, ‘아이고’ 하시면서 떨어진 감을 주워
올라오셨던 찰라의 기억이 난다. 참 억척스럽고도 대단하셨다!!!
또 초저녁 잠결에 외할머니도 영자아재도 또 호자아재어머님, 영옥이누나어머님도 재홍이형엄마도
안방 구들에서 동네할머니 아재들이 모여 감을 깎는다. 호롱불 남포불이라 가장자리에서 잠을 자는
나는 어두침침하게 비몽사몽간에 그 구수한 소리를 들으며 깼다가 다시 잠이 들곤했다.
‘시사아 시사아! 상그도 그 꼴깝으 떠나?’ ‘옌날 아래골 노할머이가 밭일으 하다가 늦으면
정지에서 도깨비가 밥으 달라고 식기를 달그락달그락 햇다' 는 무서운 얘기며 혼사 얘기 등을 하며
도란도란 작은 무쇠칼로 감을 깎는다. (세상에 세상에! 아직도 그 꼴갑을 떠나?)
외가는 논농사 밭농사를 지었지만 감농사를 많이 지어 식구며 자식들 공부시키고 했다. 강릉지역말로
또배(크고 넓적함) 고동선(크고 빼족함) 돌감(작지만 닮), 외감(접부쳐서 무척 큼) 주로 곶감은 또배로
만들었고 고동선은 침을 담그거나 홍시로 많이 먹었고 돌감 등은 깎아서 말려 곶감 감말랭이로 많이
먹었고 윗부분을 따서 배꼽이라하여 말려 먹었고 감껍질은 한겨울에 먹기 시작했다.
침감은 주로 작은 감으로 상품용으로는 고동선도 많이 담근 것 같다. 익은 감을 따서 단지에 미지근한
물을 담고 구들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 뜨겁게 하여 며칠을 익히면 남은 떫은 맛이 사라지고 단맛이 나서
맛있었다. 집집마다 아랫목에 많이 두었다. 잘 익으라고 단지에 다른 것을 넣지는 않은 것 같다?
곶감은 감을 이렇게 깎으면, 외할아버지께서 미리 산에서 꺾은 싸리가지를 다듬어 한쪽 끝을 뾰쪽하게 하여
깎은 감의 정중앙을 뚫어서 꿴다. 12개 정도 꿰서 감전에 새끼줄에 양옆을 끼워 말린다. 또는 추녀 밑에
새끼로 매달아 말리고 해가 지면 다시 걷어 사랑방에 두었다가 다시 내다건다. 또 준시라 하여 감꼭지를 남겨
싸리꼬챙이로 꿰는 것 없이 말린다. 이러면 상품가치가 올라간다. 다 말리면 한 꼬지 열개 씩 접고 다듬어
방안에서 말리면서 하얀 분을 내면 더 달다. 이렇게 하여 1년에 300접씩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오늘은 그때 먹은 침감과 곶감이 그리고 할머니 아재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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