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바우길과 산악길

 

 

   2000년 여름,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을 넘고 세석산장에서 1박, 홀로 온 종주였는데, 저녁시간은 주위 사람들이랑

   어울려 한 잔에 웃음꽃, 좋은 시간이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왔기에 하염없이 지리지리한 길을 걸어 노고단 지척 돼지령에

   바라본 왕봉은 나에게 형언할 수 없는 진취적 기상, 호연지기를 가르쳐 주었다. 그 옛 선현들의 호연지기, 용맹스럽게 세차게

   천왕봉바라다보며, 세상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겠노라 다짐했다. 노고단을 지나면서 찿아든 어두움 속에, 성삼재로 내려와

   구례로 돌아왔다. 지금은 마흔넷, 기회가 되면 여름에 그 길을 다시금 걷고 싶다. 어려서 산촌자락에 살았고 장거리달리기를 

   좋아해서 그랬는지, 스무살에  처음 접해본 청학산(소금강) 노인봉이 산보처럼 재밌었다. 가을이었는데, 좀 더웠지만 반대로   

   진고개 산장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운이 콧등을 스치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이렇게 시작한 산행이 인생의 훌륭한 취미가 되었다.

 

 

   친구의 초대로 경주남산 답사산행을 했다. 그 전에 한두 번 갔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대로 였다. 이십 여명이 되는

   답사행렬에 역사학자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경주남산은 보물창고였고, 지나온 역사 그 자체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 회사와 바쁜 일상에 묻히다 보니, 산행은 일년에 그저 몇 번, 그 것도 감동이 적었다. 그러던 중 몇년前 1월

   울산 집근처 호계 천마산과 신라유적 관문성을 돌아보는 작은 산행이 있었다. 성덕왕 때 왜구를 막기 위해 경주로 접어드는

   접경지대 천마산 능선에 성을 축조하여 외적을 방어한 유적이다. 마치 천년前 화랑이 된 것처럼…… . 여기저기에 흩어진

   무덤은 많은 사연과 시간을 말하는 듯 멈춰 있었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역사 선조의 숨결이 느껴진다는 표현이 옳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시작된 동천강 둑길을 금상첨화였다. 물에는 겨울철새 오리들이 노닐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또 여름에는

   백로가 날고, 억새와 나무 자연 그대로의 색으로 아름다움을 주는 곳이었다. 그런가 하면 강변과 들에 불청객인 폐가전과

   쓰레기는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참 아쉽고 우리 건강과 취미를 사랑하듯 자연을 사랑해야겠다.

 

 

   사실, 바우길(둘레길)과 산악길(산행)은 뚜렷한 구분이 없다. 다만 좀 높은 산과 낮은 산, 들길을 걷고 즐기는 것 뿐이다.

   굳이 지자면, 높은 산악은 우리에게 큰 용기, 호연지기를 길러주고 바우길(둘레길)은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지혜를 주고,

   인생과 자연, 역사에 대한 자연학습장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런 산행과 여행의 목적은 피로도 풀고 즐기는 것이지만,

   자기자신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옳은 길을 찾는 여행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끝으로 테무진의 명언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없애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칸이 되었다.“

   자기 스스로를 절차탁마 여 바꾸고 개선시키고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러한 과정에 이 바우길과 산악길 산행은

   일조할 수 있다. 좋은 수련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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