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과 4.27 판문점선언





   정말 감격스러웠다.

   판문점선언 보다도 두 정상이 그렇게 만나는 자체가 정말 좋았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비극의 상처로 남아있는 그곳에서 65년 만에

   만나 정겹게 악수를 하고 대화를 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우리가 원래는 그렇게 가까웠다!!! 


   그 출발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응원단 파견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이은 남한예술인의 북한 방문과 공연 등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특히 김여정 김영남이 방문했을 때 네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 관계를 돈독히 한 것에 큰 감동과 의미를 갖는다.


   합의를 이뤘으면, 차분히 단계적으로 실질적 진행이 되어야 한다.

   가슴과 감성은 높게 그러나 머리와 이성은 냉정히 해야 한다.

   2000년 6.15 선언, 2007년 10.4 선언에 이은 11년 만에 남북정상의 만남이다.

   물론 그 전에는 1972년 7.4 남북당국자 회담 ~~~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

   많은 만남과 합의가 진행되었고 실질적 진전이 있는 것도, 합의 자체인 것도...


   천년의 통일, 70년의 분단을 넘어서려는 우리의 노력이다.

   천년의 통일이란, 918년 왕건의 고려 건국, 926년 발해 멸망과 유민 흡수

   935년 신라 경순왕 김부의 항복, 936년 신검군 격퇴로 자주적 통일 이룬 것이다.

   물론 676년 문무왕 신라의 삼국통일도 있지만, 698년 대조영의 발해와 더불어

   절반의 통일, 남북국 시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 그리고 1910년 한일 합방, 1945년 8.15 광복 그리고

   1945년 광복직전 소련군의 북한 주둔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를 보면,

   천년의 통일 한국이었다.


   그 독립과 통일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아직 진행형이다.

   백범 선생과 많은 애국지사의 독립에 대한 그리고 남북한 통합을 위한

   그 열정을 가슴 속에 간직 하고 그 마음으로 오늘의 우리를 바라본다.

   물론 초교부터 고교시절까지 반공교육에 교련교육, 27개월의 군생활

   강원도 전방 지역에서 경찰 대공형사였던 선친의 행적과 삶을 회고하면

   반공이 무엇인지, 또 북한독재가 무엇인지, 한국전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 하고 알고 있다. 거기에는 필연적인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무지와 강요도

   시대적 상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궁극적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 통일이

   필수적임은 말할 필요 없다. 그 과정은 삼국 통일의 과정 만큼 힘들 수도 있고

   많은 인내와 서로의 신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약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남한과 북한 중 한 나라가 먼저 멸하고나면 남은 한 나라도 위기를 맞을 것이다.

   삼국의 통일 과정을 보면,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하고 다시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의 분열과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668년 고구려가 멸하고

   신라는 당의 야욕을 분쇄하며 매소성전투, 기벌포전투의 승전 후 드디어

   통일 국가를 이뤘는데, 그 700년의 기간동안 삼국에 어떤 변화와 혁신이

   일어났는가, 가장 늦게 일어났지만 6세기에 혁신 하고 불교와 화랑도 등을 통해

   국민의 힘을 하나로 일궈낸 신라가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우리 힘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필수적이다.

   높은 이상과 개혁 개선을 완수한 국가는 흥하고 또 그것을 계속 끝까지

   가야 된다. 개인과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좋게

   바꾸고 개혁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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