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 이지함과 깨진 도자기
토정 이지함은 조선 중기 선조 때 학자이고, 특히 사주명리학으로 유명한 토정비결을 지은
예지가이지요! 지나가는 한 여담을 소개하면, 하루는 토정이 집에 있던 도자기 한 점의 상을 보니
명이 다할 운이었다. 아니, 멀쩡한 도자기가 깨진다니, 신기하고 희한해서 오늘 하루는 그 도자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오전과 정오를 지나 오후 내내 해가 질 무렵까지 그 도자기는 온전했다. 마침 일을 마치고 부인이 돌아왔다.
부인은 돈에 관심 없고 융통성도 없는 토정이 늘 불만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별나게 빈둥대고 있다. 드디어
힘든 일을 마친 부인이 바가지를 긁어대는데 토정은 그 도자기에만 집중하여 관찰하며 부인의 말을
무시했다.
옆집 남편은 이래 잘하고~~ 관에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신용대출 좀?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순간 불끈
토정이 지켜보던 그 도자기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기는 크게 두 조각 나며 다시 잘게 박살났다.
아! 내 도자기!! 결국 이렇게 운을 다하는구나! 자신이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토정은 그 도자기의 상을 보았지만, 자신과 엮인 운세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토정이 그 도자기가 깨질 운이라 보고 그냥 집을 나왔다면 그것은 온전했을까? 마침 바쁜 일로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다른 일을 보았다면, 부인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도 하고 또 방을
청소 하다가 실수로 깨뜨릴 수도! 아니면 도둑이 들거나 다른 사람이 깨뜨릴 수도! 왜냐하면 깨질 운이었기에
다른 사유로도 반드시 깨져야 되지 않았을까???
1. 보통 예지자라면 그 사건을 먼저 알고 관여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최종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되는데, 여기서는 토정이 자기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물건으로 예지를 했기에, 결국에는 관여하게 됩니다. 토정의 부인이 도자기를 파손시킨 행위자가 되고, 토정은 부인이 도자기를 파손토록 감정을 상하게 하여 이성적 행동을 벗어나도록 하게 한, 일명 행위촉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토정이 도자기가 깨질 것을 예지는 했으나, 급한 일로 집을 비운 사이에 부인이나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사유로 깨졌다면, 예지도 훌륭하고 관여하는 것도 없어서 더욱 좋은 것이 아닌가?
2. 다음은 좀 더 넓게 보면, 토정이 그 도자기의 상을 보니 명을 다할 운이었다. 지켜볼 심산도 있었지만, 바쁜 약속으로 밖에 나갔다 해가 진 후, 돌아와 그 도자기를 보니 멀쩡했다. 다시 그 도자기의 상을 보니 온전한 상이었다. 그럼 전에 보았던 그 깨질 운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토정의 긍정적 행동으로 인해, 그 도자기의 운이 바뀌었단 말인가? 그 뒤로 오랫동안 그 도자기는 토정의 집에서 빛을 발했다. 결국 토정이 상을 보고 관여하였기 때문에 도자기의 운이 바뀐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은 어쩌면 많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글은 그 어떤 사실에 대한 증빙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때(1983년) 독일어 선생님(허O구)께서 여담으로 해줬던 말씀을 기억하여 다시 쓴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치열한 삶 속에서 잠시 토정 이지함에 대해 알아보고 보다 더 나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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