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1주년] 소나무에 새겨진 ‘해병 투혼’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포탄들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북한 황해도 개머리 기지에서 날아오른 방사포탄들이었다. 집중 포화를 맞은 연평부대에서 피어오르는 화염과 포연은 마을 앞 부둣가에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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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23일 휴가길에 나섰다가 북한의 포격으로 해병대 연평부대가 화염에 휩싸이자 서둘러 복귀하려다 포탄에 맞아 숨진 서정우 하사의 해병대 모표(모자에 붙이는 마크)가 길가 소나무에 깊이 박혀 있다. 해병대 제공 |
제대를 한 달 앞두고 12박13일간의 마지막 휴가길에 올라 인천으로 떠날 여객선을 기다리던 서정우(당시 22세) 병장은 멀리 부대에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에 넋을 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부대로 달려갔다. 어엿한 청년이 된 아들의 귀향을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도 잠시 뒤로 미뤄놨다. 반격에 나설 연평부대 화기중대의 81㎜ 박격포 사수라는 임무가 먼저 떠올랐다. 화염과 포연 속 사지(死地)에 남아 있을 동료들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부두에서 출발한 버스가 부대 앞에 도착하자마자 튕기듯 뛰어내려 무작정 부대로 이어진 언덕길을 내달려 올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동료들보다 한발 앞서 달리던 서 병장의 바로 앞에서 적의 122㎜ 방사포탄이 불을 뿜었다. 북한이 2차 포격에 나선 오후 3시 15분쯤 서 병장은 그렇게 흩어지는 화염과 함께 스러져 갔다. 이튿날 서 병장이 산화한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 소나무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동료 해병들이 발견했다. 서 병장의 정모에 붙어 있던 해병대 모표였다. 포격 당시의 충격에 날아간 모표는 소나무 줄기 한가운데에 또렷하고 깊게 박혀 있었다. 억울하고 분했나 보다. 그래서 포격 현장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나 보다.
서 병장의 모표는 지금 ‘해병의 투혼’이 돼 있다. 해병대는 소나무와 이 모표를 그대로 보존, 영원히 서 병장을 기리기로 했다. 정부는 서 병장을 하사로 1계급 추서하고,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사고 판단은 다르고 당연히 행동도 다르다. 경주 남산을 몇 번 갔어도 그 곳이 보물창고임을 잘 알 지 못했다. 그러나, 전문가와의 한 번의 답사에 많은 것을 배우고 전율을 느꼈다. 아는 것 만큼 보인다.
작년 북한의 연평도 기습포격에 그 정도 반격을 했다는 것은 역시 정예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보병출신인데 과연 1개 소대가 주둔지에서 적으로부터 기습 받았다면 1개 분대라도 반격이 가능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살기 위해서는 반격해야 된다.
이 젊은 해병의 투혼과 소나무에 박힌 모표가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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