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를 도라 칭하면 그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칭하면 그 이름이 아니다.
내가 깨닫고 보았다는 도(道)는 사실 내가 알고있는 그 도(道)가 아니고,
내가 보고 알고 있는 이름(名)은 사실 내가 보고 알고 있는 그 이름(名)이 아니다.
참! 지극히 관념적이고 숭고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도(道)의 관념적 실체를 알 수 없거니와
또 안다 하여도 서로 다를 수도 또는 같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도(道)를 논할 수도 없거니와
비록 상대적으로 객관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그 실체를 알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도 마찬가지이고 그 사물의 이름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기존 관념을 탈피하여 도(道)는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고 조화롭게 대하고 즐기고 있는
그대로 두면 되고, 또한 내가 알고 접하는 이름(名)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고 조화롭게 대하고 즐기고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는 의미로 본다.
사람이 자연환경을 가장 잘 가꿀 방법은 무엇인가? 간섭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것
내 아이를 가장 잘 교육할 방법은 무엇인가? 간섭하지 말고, 그냥 뒤에서 지켜보는 것
이 답은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답이다. 그러므로 정답에
가장 가까이 갈 수도 있다.
관념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물을 또는 이치를 인식하고 정리하여 받아들이는 체계까지도 말한다.
예를 들면, 오목한 것을 음, 볼록한 것을 양 그래서 생물도 무생물도 모두 음양(요철)으로 본다.
그러므로, 채소 빨간 고추는 사내 아이를 뜻한다. 그러한 관념들이 모든 인간생활에 필요한
사물의 이름을 붙이거나, 물건을 만들 때도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념을 탈피하라는 얘기가 이 글의 요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글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사람이 심신에 배어있는 관념과 사고를 버릴 수가 없다.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도덕경을 통해 새로이 정립한다는 자세를 취해야 글의 이해가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을 두가지로 보고, 즉 이 세상을 느끼고 자각하고 맛보는 나,
그리고 그 외 모든 것, 즉 내가 아닌 것 남 이렇게 보고 도덕경을 읽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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