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10장 자로문강(子路問强)
흔히 선비하면 글을 읽고 공부하고 실천하여 세상을 여는 사람들인데 그 이면에는
현실적이지 못하고 유약면이 나타난다. 그러한 잘못된 관념을 확 쓸어버리고 새로운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사람이 바로 자로(子路)이다. 아주 날렵하고 용맹하였으며
처음 공자를 만났을 때 위압적 직선적인 말을 썼으며 심지어 공자를 때릴려고까지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위나라에서 난으로 죽고 그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비참했지만, 아주 강직함과 적극성, 단호함의 대명사였다. 자객에 의해 죽는 순간까지
군자의 기품, 떨어진 갓을 다시 쓰고 정좌 하고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오늘날 학자이든 학생이든 아니면 무엇이든지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귀감으로
삼고 修身하면 지혜롭고 덕 많고 그리고 강하고 굳셀 것이다!!!
자로가 강함에 대하여 묻자,
자왈, 남방의 강함인가? 북방의 강함인가? 또한 너의 강함인가?
용서와 온유를 가르침으로 하고 무도함을 되갚지 않음이 남방의 강함(强)으로
군자가 그곳에 있다.
병기와 갑옷을 입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음이 북방의 강함(强)으로
강자가 그곳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화합하되 흐르지 않는 굳세고 강함이여!
가운데 있되 기울지 않는 굳세고 강함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털끝도 변치 않는 굳세고 강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으면 죽음에 이르더라도 변치 않는 굳세고 강함이여!
子路問强,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 故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자로(子路, 기원전 542년 ~ 기원전 480년)는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정치가이자, 무인이다. 이름은 중유(仲由) 그의 자인
자로(子路) 또 다른 호칭인 계로(季路)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로는 공자(孔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천하유세
동안 고난을 끝까지 함께 하였다.
공자와 14년의 천하주유, 망명생활을 함께 했으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때 위나라에 남아서 공씨의 가신이 되었으나
왕실계승분쟁에 휘말려 괴외의 난 때 전사하였다. 그의 유해는 발효되어 젓으로 담가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는 크게 슬퍼하여 집안에 있는 젓갈을 모두 내다 버렸으며, 이후에도 젓갈과 같은 종류의 음식만 보면 "젓으로 담가지다니!"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최연장자였으며, 어떤 면에서는 제자라기 보다 가장 친한 친구요 가장 엄격한 비판자였다는 견해도 있다.
그는 공자가 문란한 진후(陳后) 남자(南子)와 회견하였을 때 분개하였으며, 공자가 두 번이나 읍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섬기려고 생각하였을 때도 항의하였다.
자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며 논어의 안연편에는 그는 약속을 다음날까지 미루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맹자에 의하면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결점을 지적하면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는 용맹스러웠고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예의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의 성격은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자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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