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21장 자성명 위지성(自誠明 謂之性)
성(誠)은 오달도 다섯가지 인륜지사, 삼달덕 知仁勇을 행하는 그 하나를
말한다. 성(誠)을 지극히 하면 결국 명(明)이 된다 함은 명(明)은 인류문명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지극한 성(誠)을 통해 결국 인간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문명을 만드는 것을 그 본성(本性) 즉 하늘의 명으로 보았다.
그러면 반대로 인류 문명에서 도로 성(誠)으로 회귀하는 것을 일컬어 교(敎)라
한다 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의 숭고한 정신으로부터 풍요한 물질 창조를
본성으로 보고 다시 그 물질로부터 숭고한 정신으로의 회귀를 일컬어 교(敎)
즉 가르침이라 한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오늘날 보편적인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시금 숭고한 성(誠) 즉 자연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그리고 정신과 물질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성은 즉 명이고 명은 성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 눈에 보이지만 허상이라는 현상과 보이지 않지만 이상적인 본체를
떠올릴 수도 있고 또는 천지인 일심동체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중심엔
우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완성되는 것이다.
성(誠)으로부터 명(明)으로 감을 일컬어 성(性)이라 하고
명(明)으로부터 성(誠)으로 감을 일컬어 교(敎)라 한다.
성(誠)은 즉 명(明)이고 명(明)은 즉 성(誠)이다.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다음과 같이 해석한 책도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순수 본성(本性)과 성(誠)을 통한
인류 문명의 구현 그리고 다시 순수 본성으로의 회귀 등 이러한 과정을 가르치는
문장으로 판단되어 단순히 명(明)을 밝음으로, 성(誠)을 정성 또는 성실로만 해석함은
그 의미가 절감된다고 생각한다.
정성됨으로부터 밝아지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밝음으로부터 정성되어짐을 교(敎)라고 한다.
정성되면 곧 밝아지고 밝으면 곧 정성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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